카카오가 2025년을 선물합니다,
2025 카카오 점자달력 제작기
카카오가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2025년을 배달한다. 2025 카카오 점자달력을 제작하고 전국 시각장애 학교 14곳과 시각장애 학생들을 찾아가 직접 전달할 계획이다. 카카오 디지털 접근성 조직이 이번에는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프로젝트를 진행한 배경, 그리고 카카오 점자달력이 나오기까지 힘찬 여정의 기록을 만나본다.
상상력은 위험하고 점자는 안전하다국립국어원이 출간한 ‘2021년 점자 출판물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등록 시각장애인 수는 총 25만 2,703명이었다. 이 중 점자 사용이 가능한 비율이 9.6%, 불가능한 비율이 90.4%로 나타났다. 점자 필요성이 낮은 저시력자를 감안하더라도 점자 문맹률은 높은 편이다. 시각장애인의 점자 문맹률이 이토록 높다는 것은 제반 교육이 부족하다는 점과 동시에, 손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어야 할 점자가 실효성이 낮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듬해 한국소비자원에서 발표한 시각장애인 식품 점자 표기 실태조사에서는 음료류 중 49.2%, 우유는 2.5%, 컵라면은 28.9% 제품에서만 점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캔 음료는 입이 닿는 윗면의 면적이 좁아 ‘음료’와 ‘탄산’으로만 구분되어 있다. 전맹 시각장애인이 편의점에서 음료를 마시고 싶더라도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면 추측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다.
점자가 없어 상상력이 필요해지는 순간은 수없이 많다. 일상 곳곳을 대체한 키오스크가 그들에게는 새로운 문턱이 된 것처럼.
아날로그가 빛을 발하는 순간기술이 발전하면서 장애인을 위한 디지털 접근성도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사각지대는 생기기 마련이다. 카카오 디지털 접근성 조직은 기술에 기대어 놓치고 있는 사각지대가 어쩌면 ‘달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달력 앱은 화면 낭독 기능을 제공해 시각장애인들도 이용 가능하지만, 내가 입력한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쓸어 넘기기(스와이프)를 하며 들어봐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청각에만 의존하다 보니 잘못 누르거나 중간에 내용을 잊게 되는 경우, 혹은 몇 달 후의 일정을 체크해야 하는 경우라면 계속 찾아서 들어야 하는 불편함도 따른다. 하지만 사고 싶어도 쉽게 살 수 없는 것이 점자달력. 이러한 보급 사정을 잘 아는 카카오 김혜일 디지털 접근성 책임자는 “우리가 만들어야겠다 싶었죠"라며 3년 전을 회상했다. 이때부터 점자달력을 만들 업체를 수소문했지만 점자달력을 만드는 공정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점자달력은 기계 인쇄 과정을 거치는 일반 달력과 달리 점자를 UV 인쇄하는 과정이 추가로 필요하다. 점자가 하나라도 빠지면 다른 글자가 되기 때문에 점자가 유실되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검수하는 과정, 색인이 포함된 월별 페이지를 재단하고 제본하는 과정 등 모두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다. 많은 업체들의 문을 두드린 끝에 마침내 원하는 수준의 기술을 가진 업체들을 찾아 논의를 시작했다.
양면 인쇄, 색인 제작, 링 제본까지 모든 공정이 다 난관이었다고 너스레를 떨 만큼 매 공정은 쉽지 않았다. 점자를 올리기 위한 테스트만 100가지 이상 거듭된 공정에도 포기는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점자달력을 소개합니다점자달력을 처음 펼치면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휴일 모아보기’ 페이지다. 점자달력 제작을 확정 짓고 기획 단계에서 한 사용자로부터 전달받은 아이디어였다. “휴일을 모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새해를 맞이할 때면 쉬는 날이 가장 궁금해지는 법이잖아요.” 다른 달력에는 없지만 사실 우리 모두 궁금했던 것, 그렇게 사용자 청취를 통해 탄생한 이 페이지는 달력을 넘겼을 때 가장 먼저 설렘을 안겨준다.
그 하단부에는 월별 색인이 자리하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BX 디자인 조직의 담당자가 제안하였는데,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몇 월인지 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몇 월인지 확인하기 위해 매번 상단의 월 표시 점자를 확인할 필요 없이 색인만으로 구분을 돕는다. 덕분에 사용자 사전 조사에서 가장 호평을 받은 기능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월별 색인을 잡고 넘기면 큰 글자와 토요일에 적힌 음력, 하단부 기념일, 절기까지 한 페이지 가득 날짜 정보를 제공한다. 기존 달력의 글자가 작아 식별이 어려웠던 저시력자들을 위해 큰 글자 크기와 4.5:1의 명도 대비 기준을 준수했다. 시원하게 보여서 좋다는 저시력자의 반응을 듣고 나서야 더 키우지 않아도 되겠구나, 안심했다고. 앞면에는 날짜 관련 정보 외 불필요한 정보는 최대한 배제하고 달력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상세하게는 기념일이 적어 아쉬웠던 부분을 해소하고자 최대 8개까지 수록하고, 음력을 토요일에 일괄적으로 넣어두어 쉽게 계산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편의성과 디자인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외에도 어디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 정보 탐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영역 구분선을 마련했다.
그 외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뒷면에 담았다. 한 장을 넘겨보면 카카오프렌즈 캐릭터가 반겨주고 있다. 카카오만이 가진 브랜드 스토리를 전달하면서도, 시각장애 학생들이 캐릭터를 글자로만 이해해 오던 것에서 나아가 직접 손끝으로 만져보고 이해하는 경험을 가지길 바랐다. 각 캐릭터별 특징을 보다 잘 살리기 위해 일부분에 촉각선을 추가하고 질감을 다르게 표현했다. 하단에는 점자로 캐릭터 설정과 표정에 대한 설명을 담았다.
카카오 점자달력의 핵심은 마지막 장에 있다. 생일이나 약속 등 자신의 일정을 직접 기록할 수 있도록 별도의 촉각스티커를 제공해 두었다. 비장애인은 달력에 적어두면 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포스트잇을 붙여두거나 종이에 흠집을 내는 등 각자만의 방식으로 개인 일정을 표시한다. 소실될 수 있는 위험이 크다. 이를 개선하고자 별도의 촉각스티커를 제작한 카카오는 촉각스티커의 점자 높이와 달력 점자 높이에 차이를 두었다. 내가 기록한 내용과 달력에 수록된 기존 내용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함이다. 촉각스티커에는 점자 외에도 화살표, 원 등 다양한 기호를 추가하여 달력이 아닌 내 소지품이나 생활용품에도 붙일 수 있도록 고안했다.
아이들에게 2025년을 배달합니다한 땀 한 땀 수놓은 점자달력. 완성을 앞두고 카카오는 다시 한번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전달해야 우리의 마음까지 전해질 수 있을까? 생각의 끝은 전국 시각장애 특수학교로 향했다. 14곳의 학교에 직접 방문해 학생과 선생님까지 모든 사람에게 나누기로 계획하고, 소속이 없는 아이들에게도 유관 기관을 통해 배부하기로 결정했다.
카카오 디지털 접근성 조직에게 2025년은 점자달력을 제작한 원년이면서 시각장애인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간 기념비적인 해다. 그럼에도 제작을 맡은 장성민 담당자는 “구현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아직도 많아요”라며 아쉬워한다. 내년에는 한층 풍성한 구성으로 더 많은 수량을 만들고 싶다는 담당자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함께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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