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로 설계됐지만 간판이 된 친구들
2012년 6월, 카카오톡 이용자 수는 5천만 명을 넘어섰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 메신저’ 반열에 올랐기에, 더 나은 메신저 이용 경험을 제시하기 위한 내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7월 들어 대화 경험 업그레이드와 카카오 브랜드 이미지 구체화를 위해 BX(Brand Experience) 팀이 꾸려졌다. IT서비스 기업이라면 일반적으로 개발자나 기획자들이 업무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지만, BX팀의 구성은 조금 달랐다. 디자인 전공자들이 고민의 주체가 됐다.
#채팅창의 조력자
BX팀의 리서치 결과, 서구권 메신저의 이모지(Emoji)와 달리 풍부한 감정을 담은 카카오톡 전용 이모티콘을 통해 채팅 경험과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동시에 해 낼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카카오톡에서도 2011년 11월 출시된 웹툰 이모티콘들이 큰 반향을 일으키던 때였다.
▲ 자체 기획한 캐릭터를 카카오톡 채팅창에서 이모티콘으로 데뷔한다 ▲ 대화를 즐겁고 풍부하게 하는 것, 캐릭터를 통해 카카오 전반에 관한 호감도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이용자 누구나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도록 캐릭터 각각이 약간의 결핍 요소를 안고 태어난다 등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당시만 해도 사내에 전문 일러스트레이터가 없었던 카카오는 감정 표현에 강한 호조 작가와 계약하며 캐릭터 구체화 작업에 들어갔다. 카카오톡 주 이용자층인 10대부터 30대 층이 호감을 느끼면서도 선점되지 않은 소재를 추려야 했다. 1차적으로 개(프로도)와 고양이(네오), 토끼(무지)와 오리(튜브)가 라인업으로 정해졌다.
여기에 이용자들의 다양한 성격들을 반영하기 위해 먼저 선정된 캐릭터들이 갖고 있지 않은 성격을 중심으로 중성적인 성격의 복숭아 캐릭터(어피치)와 묵묵한 성격의 두더지 캐릭터(제이지), 무표정한 조력자인 악어 캐릭터(콘)가 추가로 정해졌다. 개발 작업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인 9월, 일곱 친구들이 완성됐다.
#일본 데뷔 후 ‘조용하게’ 한반도 상륙
완성된 친구들이 곧바로 한국의 카카오톡 채팅창에 등장할 수는 없었다.
“먼저 선보인 웹툰 이모티콘들이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회사가 직접 기획한 프렌즈들이 진입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쟁이 거셌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오픈 마켓 생태계 안에서 너무 잘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고 있지만, 그땐 좀처럼 답을 찾기 어려웠어요.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가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전례도 없었고요. 안 예쁘다는 평도 많았습니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완성된 프렌즈를 카카오톡 채팅창에 바로 임베딩(Embeding) 할 수 없었어요”. 카카오프렌즈 제작을 리딩 했던 조이(Zoey)의 기억이다.
‘보이스톡’이 카카오톡 일본판에서 먼저 선보였던 것처럼, 프렌즈의 데뷔 무대도 일본으로 정해졌다. 당시 카카오는 카카오톡의 일본 내 확산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테스트베드(TestBed)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특별한 호응도 비판도 일어나지 않았다. 2012년 11월 2일, 카카오프렌즈가 한국의 카카오톡 채팅창에 ‘조용하게’ 등장했다.
#'카톡 개’는 알아도 ‘프로도’는 모르던 5개월
이용자들이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해 나가면서 카카오프렌즈는 점차 친밀도를 더해갔다. 하지만 개별 캐릭터들의 이름이나 세계관은 대중들의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프로도’나 ‘튜브’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해도 ‘카톡 개’나 ‘카톡 오리’라고 말하면 뜻이 통하던 시간이 5개월 정도 흘렀다.
2013년 4월 22일, ‘국민 캐릭터’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 사건이 일어났다. 비즈니스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 시험 삼아 만들어 선물하기를 통해 판매한 1천 개 물량의 카카오프렌즈 봉제 인형들이 7시간 만에 품절 사태를 맞이한 것. 품절된 제품들은 온라인 중고 장터에서 몇 배 비싼 가격에 되팔리는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이름도, 성장 배경도, 그들이 품은 이야기도 잘 몰랐지만, 이용자들은 이미 카카오톡 채팅창을 통해 자기 자신이나 친한 친구의 모습을 프렌즈와 비교하고 투영한 다음이었다.
조이가 당시를 회상했다. “TV나 만화를 통해 서사와 성격을 내비친 뒤 인기를 얻는 종전의 캐릭터 비즈니스 방식과 완전히 다르게 상황이 전개됐습니다. 세계관이 있었지만, 그와 무관하게 이용자들 나름대로 상상해 둔 이야기들이 큰 힘을 발휘한 거죠. 프렌즈들은 이용자들과 함께 서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이라는 점을 확인한 계기였습니다”.
#힐러(Healer), 라이언의 등장
먼저 등장한 카카오프렌즈 7개 캐릭터는 채팅 헤비 유저층인 10대부터 30대의 보편적인 성격을 투영해 태어났다. 크고 작은 결핍을 안고 있고, 희노애락을 선명하게 표현하는 등 청춘의 특징을 갖고 있는 이유다. 반면 3년 2개월 늦게 합류한 라이언은 사뭇 점잖다. 왕위 계승자로 태어났지만 다른 사자들과 달리 갈기가 없는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느껴 둥둥섬을 탈출한 라이언이 Secret Forest에 도착해 만난 것이 일곱 카카오프렌즈다.
태생적 근엄함 때문일까. 다른 프렌즈들이 격한 감정을 표현할 때 라이언은 무표정한 얼굴로 어깨를 토닥이거나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만있는다. 이용자들이 프렌즈에게 자신을 투영했다면, 라이언에게는 위로를 받게 된 이유다. 라이언은 10대는 물론이고 IT서비스에 거리감을 느끼는 중장년층까지 두루 포용한다.
라이언이라는 걸출한 힐러(Healer)의 등장으로 프렌즈 유니버스는 한층 균형감을 더했다. 최초 기획 때 ‘나쁜 남자’ 성격의 또 다른 라이언도 함께 만들어졌지만, 처음 등장한 라이언이 이내 큰 인기몰이를 하면서 세상에 나올 이유를 상실했다.
#시너지가 증폭되다
카카오프렌즈는 먼저 출발한 카카오 이모티콘과 함께 채팅창의 감정 표현을 한결 풍성하게 만들었고, 종전에 없던 디지털 아이템 시장을 키워냈다. 여기에 더해 2013년 4월 네 가지 봉제인형으로 선보인 캐릭터 굿즈들은 2014년 4월 신촌 팝업스토어를 필두로 2020년 현재 국내외 30여 개의 오프라인 전용 샵을 가진 비즈니스로 확장됐다.
카카오는 2013년 8월부터 내부에 일러스트레이터들로 구성된 조직을 꾸려 IP 비즈니스의 확장에 본격 대비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6년 1월에는 라이언이, 그해 말에는 리틀프렌즈가 등장하며 프렌즈 유니버스를 강화하고 있다.
입체적인 시너지에 힘입어 카카오프렌즈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장기간 서사를 쌓아온 여타 캐릭터들을 제치고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캐릭터 1위에 올랐다. 2017년부터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카카오프렌즈는 모바일 환경에서 탄생한 유일한 10위권 캐릭터이기도 하다. 처음 계획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 낸, 그리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카카오프렌즈. 이를 바라보는 초기 기획자 조이가 소회를 밝혔다.
“캐릭터 전문 기업이 아닌 인터넷 기업에서 태어났기에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행보들을 이어올 수 있었어요. 카카오톡이 좋은 커뮤니케이션 툴이라는 걸 증명하고 그걸 돕기 위해 태어났지, 다른 제약은 없었으니까요. 큰 어드밴티지 두 가지가 있었어요. 국민 메신저에서 태어났기에 누릴 수 있었던 캐릭터의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노출. 그리고 게다가 어른들도 늘 쓰는 카카오톡이기에 ‘아이들의 캐릭터’라는 선입견에도 갇히지 않을 수 있었던 점이죠. 이제는 안팎의 누구도 캐릭터 IP 비즈니스를 왜 카카오가 하느냐며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디즈니나 산리오처럼 우리에게 익숙해진 거죠.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을 때 카카오프렌즈가 전혀 다른 방식을 제시하며 등장했던 것처럼, 새로운 미디어가 대세를 이룰 때도 카카오나 카카오프렌즈가 큰 역할을 해내길 응원하는 마음입니다”.
#카카오프렌즈에 관한 소소한 기록들
카카오프렌즈가 처음 선보일 때처럼, 리틀프렌즈도 내부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자칫 프렌즈 캐릭터 전체가 과도하게 어려 보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이유로 완성된 상태에서 1년이 더 걸려 세상에 나온 리틀프렌즈는 전 연령대에서 사랑받고 있다.
라이언이 탄생 직후부터 최고 인기 캐릭터에 등극한 건 아니었다. 무지가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했는데, BX팀은 라이언에 쏠리는 관심이 너무 적다고 판단해 ‘밀어주기’를 시도하다가 거절당한 경험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고, 라이언은 ‘라상무’, ‘라전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20년 9월 11일, 카카오프렌즈에 작은 식구 하나가 늘었다. 길을 걷던 라이언이 고구마 박스에서 놀던 고양이를 버려진 길냥이로 오해하고 입양까지 해 버린 것. 발행일 현재 라이언 인스타그램에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춘식이라는 이름은 라이언의 팬들이 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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