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을 지켜봐 온 시선들
이용자들을 대신해 카카오톡과 IT산업계를 오랜 시간 지켜봐 온 시선들이 있다. 10여 년 이상 현장을 뛰고 데스킹을 보며 이용자들을 대변해 온 두 IT담당 기자들을 만났다. ‘외부인의 눈으로 봐 온 카카오’에 관해 물어봤다.
#꿈한국경제신문 박영태 부장(이하 박부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IT업계를 취재하며 처음 만난 브라이언(김범수 의장)에 관한 기억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삼동 스타타워에서 열린 NHN 송년회에 초대받아서 간 적이 있었어요. 김범수 당시 대표가 ‘우리는 꿈을 꿔야 하고 실현하기 위해서 열심히 같이 잘해보자’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외부인인 저도 마음이 울릴 정도로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그가 미국으로 훌쩍 떠났고 몇 년 지나 귀국해서는 ‘아이폰 출시를 보고 가슴이 뛰었다, 모바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고 시작할 거’라며 인터뷰를 자청하더군요. 그렇게 시작했던 ‘위지아’ 서비스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어려운 중에 카카오톡이 출시됐죠. 메인 서비스는 아니라고 말했어요. 다른 서비스들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주는 일종의 서비스 제품 역할로 출시된 카카오톡이었죠. 콘텐츠 역할을 기대했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카카오톡은 ‘메인’이 됐습니다. 인터뷰를 한번 더 했어요. 오래전부터 말해 오던 ‘꿈’에 관한 단편들이 정리되더라고요. 100인의 벤처 CEO를 양성하겠다는 포부도 기억에 남습니다.”
2010년 당시 IT취재 기자들의 관심사는 ‘카카오톡 유료화’였다며 이데일리 김현아 부장(이하 김부장)이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이용자 수 100만 명을 넘어갈 무렵부터 현장 기자들 사이에서 카카오톡이 서버비나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어요. ‘평생 무료. 유료화 계획이 전혀 없다’는 공식 입장을 여러 차례 내놨죠. 김 의장의 생각을 들어보니 관점이 달랐어요. 유료화로 돈 벌 생각이 없다며, 고객 습관 속으로 들어가서 많은 이용자들이 모이면 누군가는 돈을, 다른 누군가는 아이디어를 들고 서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었죠. 당시엔 어떤 회사도 그렇게 이용자 니즈에 고스란히 집중하는 전략을 구사하지 못했잖아요. 플랫폼 비즈니스를 할 때 어떤 철학과 꿈을 가져야 하는지, 카카오가 기준을 세운거죠.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상황이었지만, 수평 문화를 견고하게 지키면서 강력한 레거시에 대항해 이용자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해낸다는 의지가 멋있었어요.”
#간절함, 그리고 실마리
2009년 11월 아이폰3GS 국내 출시 이후 2010년 한 해는 ‘스마트폰 확산 원년’이 됐다. 스마트폰 보급 그래프와 카카오톡 이용자 확산세는 결을 같이 한다. 카카오톡을 쓰기 위해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스마트폰을 가진 김에 카카오톡을 설치하는 순환 고리가 만들어졌다. 카카오톡은 ‘앱’의 대표주자가 됐다. 많은 사람들은 이 추세가 생겨날 무렵부터 카카오톡을 기억한다. 하지만 기자들은 그로부터 3년 전의 시간들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부장이 말했다.
“미국에서 내놓았던 부루(buru)닷컴, 한국에서 선보인 위지아(wisia), 그리고 카카오톡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카카오 수다까지. 카카오톡이 좋은 반응을 얻기 전까지 이들 서비스에서 실패를 겪었어요. 3년 동안 말이에요. 회사가 무척 어려웠죠. 메신저 서비스가 카카오톡 하나였던 것도, 독보적이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모바일 인터넷의 시대를 예감하고 선발 주자로 내달린 점, 그리고 서비스 장애나 유저 반응에 간절함을 갖고 대응했다는 점에서 승부가 갈렸다고 봐요.”
실제로 당시 아이위랩은 이용자들의 작은 피드백도 놓치지 않으려 했고, 자연스럽게 우호적인 여론도 형성됐다. UX/UI 이용자 조사도 진행했다. 요즘은 보편화된 조사지만, 당시 수십 명 규모의 스타트업이 이용자 커뮤니케이션을 그 정도 수준으로 진행한 사례는 드물었다.
김 부장은 이용자 인식 선점을 통해 시장 석권의 실마리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카카오톡 출시 당시 여타 경쟁 제품들은 스스로를 ‘모바일 메신저’라고 칭했어요. 카카오톡은 ‘무료 문자’라는 인식을 재빠르게 선점했습니다. 유료 문자가 30원 하던 시절 이잖아요. MMS는 더 비쌌고요. 카카오톡에 새로운 친구가 보이면 ‘이 친구도 스마트폰을 샀네’라고 생각했죠. 무료로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이 늘어나는 게 눈에 보인 겁니다. 이용자들이 정말 고마운 서비스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거죠. 마케팅이라기보다는 서비스와 기업의 철학이 거둔 성과라고 봅니다.”
#색다른 플레이어
고집스럽게 무료 정책을 고수한 카카오톡인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한국 기업사에 등장한 적 없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도 생겨났다. 김현아 부장이 2012년도까지의 기억을 소환했다.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표시해주는 등 이용자 습관을 파고드는 것을 보며 일정 수준의 성공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양한 사업군에서 성과를 일궈낼지 당시 누구도 내다보지 못했어요. 특히 애니팡 돌풍 이후 경쟁사들이 게임 플랫폼 사업을 연이어 전개할 때 위기가 왔던 걸로 기억해요. 김 의장의 지인들이 십시일반 투자를 해주었고, 국내외 IT기업들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났죠. 그 이후 폭풍 성장세를 보여준 거고요. ‘선물하기’를 통해 타인을 위한 소비를 시장에 제안한 것, 궁극의 신뢰 영역인 금융 분야까지 안착한 모습은 카카오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색다른 모습이죠.”
박영태 부장은 캐릭터 IP와 비즈니스의 결합을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인형이나 완구, 문구 정도를 만드는 것이 캐릭터 비즈니스라고 여기던 게 불과 10년 전입니다. 더 나아가면 영화나 TV시리즈 정도였죠. 카카오프렌즈도 처음엔 그 정도 일거라 예상했어요. 그런데 달랐어요. 카카오톡을 비롯해 여러 서비스들 요소요소에 프렌즈의 세계관이 녹아 있었던 거죠. 이용자들이 서비스를 쓰면서 캐릭터와 호흡하는 것처럼 느꼈달까. 친근하기에 새로운 비즈니스로의 확장 기회도 계속 생겨난 거라고 봅니다.”
#인상
두 기자는 경영자와 회사의 ‘인상’이 평판을 만드는데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김범수 의장이 기자들에게 오랜 시간 공감 가는 행보를 보여왔고, 자연스럽게 그와 회사, 서비스의 행보를 기대하는 기사도 나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게임 협회장을 맡아 몸담은 산업군을 키워나가는데 앞장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한게임 고스톱이 사행성이다 아니다 논란이 있었기에 개인적으로 부담이 컸을 때였지만 앞에 나선 거죠. 권위의식 없는 소탈하고 따뜻한 모습도 전형적인 기업 경영진의 모습이 아니에요. 좋은 인상이 쌓여서 한 줄 나올 기사도 몇 줄씩 더 쓰곤 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동료 기자들이 대부분 그랬습니다.”
김 부장은 성장기마다 등장한 용인술과 M&A를 통해 카카오만의 민첩하고 과감한 인상을 만들어 왔다고 말한다.
“20대 청년이었던 이제범을 CEO로 내세운 회사 초창기부터 방대한 이용자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시기에 이석우 대표를 영입한 것, 분사와 M&A가 필요할 때 투자심사역 출신인 임지훈 대표를 발탁한 사실, 여민수-조수용 공동 대표가 수익화를 진두지휘 하게 한 점 등. 적재적소에 능력 있는 인물들이 지휘자가 된 사실이 카카오의 인상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죠. ‘인사가 만사’라 잖아요. ‘김기사’를 인수해 카카오모빌리티의 성장에 활용한다거나, 로엔엔터테인먼트 M&A를 과감하게 진행해 수익원을 확보한 이력도 다른 기업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행보였죠.”
#아쉬움, 그리고 숙제
‘내수용 플랫폼’. 카카오톡에 따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다. 김현아 부장은 해외 시장에서 카카오톡이 뻗어 나갈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사실이 아쉽다고 평가했다.
“네이버는 일본 검색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라인으로 성공할 때까지 장기간 버틸 수 있는 자금력이 있었죠. 라인이 일본 시장에 안착하고 소프트뱅크와 혈맹을 맺어 더 큰 시장을 바라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중동이나 동남아에서 카카오톡이 인기를 끌었는데, 현지 이용자 습관을 파악하면서 뚝심 있게 사업을 해 나가기엔 자금력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8~9년 전만 해도 벤처 캐피털 업계나 정부의 투자가 지금 같지 않았거든요. 김 의장의 지인들이 십시일반 투자할 무렵, 정책 자금이나 국내 VC 자금이 대규모로 들어왔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랬더라면 지금 세계 무대에서 훨씬 수월하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픽코마나 카카오프렌즈, 카카오M의 콘텐츠들이 글로벌로 나아가고 있지만, 카카오톡을 통해 유통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쉽죠.”
박영태 부장은 카카오가 사업을 전개해 나가는데 태생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의 서비스들이 지향하는 특징을 ‘시장 민주화’ 같은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기존 질서나 기득권과 충돌하는 거죠. 비즈니스를 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갑갑함’일 겁니다. 하지만 여러 채널들이 이용자들에게 잘 흡수되어 생활화된다면, 플랫폼 하나에 의존하는 기업보다 훨씬 더 파워가 생기겠죠. 사업하는 과정에서 ‘레거시’들과 적당히 양보하고 주고받는 개념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서로 공유하고 공감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죠. 카카오가 앞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숙제일 겁니다.”
카카오톡이 처음 등장했을 때 ‘누구나 연결될 수 있다’는 장점에 많은 이용자들이 환호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장점은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김 부장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통신 비밀을 소중히 하면서, 의료 격차 해소와 같은 큰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한국 사회에서 상징적인 스타트업 성공 케이스가 된 만큼, 카카오 출신들이 계속해서 창업과 성장을 이어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부장 역시 사회적 병리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로써의 카카오톡을 기대한다며 제언했다. “카카오톡이 사람들을 더 따뜻하게 묶어줄 수는 없을까요? ‘관계’가 가장 잘 형성된 서비스인 만큼 세대를 세분화해서 사람들을 연결해준다면 어떨까요?”
평소 ‘인터뷰어’ 역할에 익숙하던 두 명의 기자들은 ‘인터뷰이’가 되는 것이 낯설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뷰 자리에서는 달랐다. 십 수년 전의 이야기부터 현재와 미래의 모습까지, 사실에 기반한 엄정한 평가와 따뜻한 기대감을 풀어놓다. 오랜 이용자이자 관찰자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훌쩍 커져버린 서비스를 맡게 된 카카오 크루들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진 관찰자들과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마주하고 있다. 10년 뒤, ‘청년 카카오톡’에 관한 이야기들은 어떻게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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